하회별신굿 탈춤의 기원과 풍자

음악|2020. 1. 5. 23:35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로 신명나는 음악과 함께 사회를 풍자하는 것은 바로 탈춤이었다. 산대탈춤, 봉산탈춤, 양주별산대와 같이 각 지방마다 특색있는 탈문화가 고르게 발전하였다. 이중 가장 유명한 양반마을의 하회별신굿과, 그들이 탈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하회탈은 우리한테 친숙한 양반탈, 각시탈, 이매탈을 포함해 11개로 이루어졌으며 국보 121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중 대표적인 9개의 탈은 저마다의 개성있는 특징과 표정으로 인간적인 특성을 담았다. 특히 양반탈은 탈춤을 출때 표정의 연출을 고려해 턱이 분리되게 제작 되었으며, 고정턱을 가진 탈들도 각도와 빛의 명함에 의해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다.    


하회탈을 쓰고 공연을 하는 것을 탈놀이라고 하는데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무형문화재 69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원은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데, 농경사회 특성상 절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풍농이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의지해야할 존재가 필요했고, 그 대상은 동네마다 있다고 믿었던 동신이었다. 결국 풍족한 농사와 마을의 안녕을 바라기위해 굿과 함께 매년 제사를 지냈고 탈춤을 추었다고 한다. 


매년열렸던 당제(제사)와 하회별신굿을 비교하자면 하회별신굿은 5년또는 10년주기로 정기적으로 열렸다고 한다. 흉년이 들거나 전염병이 돌때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생각하여 굿을 했는데 그게 바로 하회별신굿의 기원이라고 한다. 하회별신굿은 신내림을 받는 것, 신을 즐겁게 하는것, 마지막으로 원래 있던 것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이루어 진다. 이를 강신, 오신, 송신이라고 한다. 


이때 행해지는 탈춤은 당시 사회를 꼬집고 풍자하는것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양반과 상민으로 구성된 계급사회에서 절대적 약자인 상민들은 양반계층을 포함한 지배층을 춤으로 비판하면서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하회마을이 양반마을이었고, 양반들이 상민들의 일탈을 지원하고 묵인해줬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양반의 지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상민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어 줌으로써 계층간에 갈등과 불화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회별신굿은 꽹과리와 북, 징으로 소리를 내며 당시에는 세마치장단에 맞춰 탈춤을 추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악기의 수가 늘면서 굿거리 장단, 정적궁과 함께 보다 다양해졌다.


하회탈을 보기위해서는 직접 안동하회마을을 방문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서는 직접 탈을 체험할 수도 있다. 물론 먼거리가 걱정이라면 서울에서도 하회탈을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사동 탈방이 하회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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